전체메뉴

무등일보 TV

[영상] 세개 고을 합쳐진 복 받은 땅···역사·자연의 오묘함 공존

입력 2022년 11월 10일(목) 17:00 수정 2022년 11월 16일(수) 11:06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순응과 이정이 창건한 사찰이다. 팔만대장경판(八萬大藏經板)을 봉안한 법보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합 수도도량이다. 사진은 단풍으로 물든 해인사 전경.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26)합천역<상> 국보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세계기록유산에 대한민국 보물

장경판 한 장 3.4kg 전체 280t

벌목 후 바닷물 2년 바람에 1년

5천200만자 연인원만 130만명

유네스코도 주목한 보관 방법

콘크리트 건물 옮기니 뒤틀려

태양 고도와 일조량 모두 계산

가치 따지기 어려운 삶의 지혜

삼보 사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의 고장 합천군은 신비함에 있어 따라올 곳이 없다. 역동적 역사와 자연의 오묘함이 공존하는 땅이다. 합천(陜川) 은 조선시대 이후에 호칭된 지명으로 '좁은 내'라는 뜻이다. 계곡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1914년 3월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초계와 삼가가 합천군에 편입돼 합천은 '좁은 땅' 이미지를 벗어젖혔다. 세 개 고을이 합쳐진 땅 '합천'이 완성된 것이다. 여기에 달빛 내륙철도가 연결되면 합천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복 받은 땅으로 변하게 된다.


◆몽골과 전란 중 왜 만들었을까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합천을 대표하는 보물이자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세계 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251년에 만들어진 16년간의 대역사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 피상적으로 알려진 것이 전부다. 세계 최강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전란 중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나라를 지킨다고 설명하면 끝인가.

한번 생각해 보자. 제3차 대장경사업은 1236년 시작해 1251년까지 16년간 이뤄진다.

몽골의 침략을 불심(佛心)으로 이겨보겠다는 소박함의 발로로 그 지난한 작업을 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하다. 불심이 대단하다고 이해한다 해도 세계 최강 몽골군이 몰려오는데 태연히 대장경판에 매달리는 고려 사람들의 한가함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대장경을 열심히 만들면 몽골군이 철수라도 한다는 말인가. 혹시 다른 뜻은 없는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의 내부. 대한민국 국보 제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호국 위해 제작" 비현실적 이유

고려시대 인구는 300만 내외로 추산한다. 그런 고려에서 제3차 대장경 사업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당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전쟁사업비보다 많은 재정과 인력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를 들여다보자. 장경판 한 장의 무게는 3.4㎏이다. 그러면 팔만대장경 전체 무게는 약 280t 규모로 5t 트럭 56대분이다. 대장경판 목재는 산벚나무로 최소 수십만 그루를 벌목해야 했을 것이다.

대장경 경판은 벌목해서 바닷물에 2년, 바람결에 1년을 말려서 옻칠한다. 판각과 필사, 다시 나무에 필사해서 완성되기까지 겹겹이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온전한 보전을 위해 운반 등에 동원된 인력만 줄잡아 수십만명이다.

전체 대장경판 글자수 5천200만자를 하루평균 40자로 나누면 연인원이 130만명에 달한다. 넉넉히 잡아도 고려 인구 네 명 중 한 사람은 팔만대장경 사업에 동원됐다고 봐야 한다. 전쟁에 시달리는 국가의 백성이 거의 모든 힘을 글자 새기는데 소진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단순히 호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얘기다. 팔만대장경은 도대체 왜 만든 것일까.


◆두 가지 타이틀 거머쥔 과학 산물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을 모신 집이다. 1995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다. 유네스코는 팔만대장경도 보물이지만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과학적 방법에 주목했다. 장경판전은 세계 기록 유산과 세계유산이라는 두 가지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과학의 산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팔만대장경을 보고 "팔만대장경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신선이 내려와 쓴 것이다"고 했다. 그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것도 문제였다. 더욱이 나무로 된 대장경을 어떻게 썩지 않게 하고 뒤틀리지 않게 하느냐는 큰 숙제였다.

그렇다면 조상들은 어떻게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호해 온 것일까. 우선 제작 과정에 과학적 비밀이 숨어 있다. 나무를 바닷물에 2년간 담갔다가 다시 소금물로 삶아내 각목으로 마구리를 붙이고 옻칠까지 칠해 부패를 막았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판을 보관할 새 건물을 짓도록 했다. 당시 꽤 큰돈 5억원을 들여 콘크리트로 건물로 번듯하게 지었다. 시험 삼아 몇개의 경판을 옮겼더니 금세 경판이 뒤틀리는 게 아닌가. 결국 콘크리트 새 건물은 장경판전만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데 최적이라는 것만 확인시켜주고 퇴출되고 말았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의 내부. 대한민국 국보 제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바람 들어와 머물다 휘돌아나가

판전은 해인사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장경판전은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판전 안 대장경들은 단 한 번의 뒤틀림도 없었다. 판전은 정면 15칸 규모로 남쪽 건물이 수다라장, 북쪽 건물이 법보전이다. 두 건물 사이에는 작은 건물 두 채를 연결했다. 위에서 보면 직사각형 형상이다.

목판은 온도 20도에서 습도 60%를 유지해야 곰팡이와 뒤틀림을 막을 수 있다. 장경판전은 건물이 받는 적당한 일조량으로 온도를 유지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동안 모든 경판이 하루 한 번씩 고르게 햇볕을 쬘 수 있다. 그래서 습기가 차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햇볕에 말리는 효과를 얻는다. 태양의 고도와 일조량을 모두 계산한 태양광 효시격 건물이 장경판전이다.

바람도 이용했다. 판전을 해인사 가장 높은데 지어 아래 계곡에서 밀려오는 바람이 판전 안 대장경을 휘감아 돌아 나가도록 했다. 바람이 들어와 한동안 머물며 한 바퀴를 빙 둘러 휘돌아 나가는 식이다. 일제 때 비가 들이친다고 비막이 판자를 설치해 보기도 하고, 1955년 장경판전 기와를 새것으로 교체했으나 통풍에 장애만 일으키다 철거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으니 장경판전의 위대함은 갈수록 가관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연구한 바로는 휘돌아 가는 바람효과가 하루 최대 5t의 물이 대장경판에 뿌려졌다 마르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해인사는 창건 이후 모두 7차례나 대화재를 겪었다. 특히 조선 후기 대화재 때는 대부분 해인사 건물이 불에 탔지만 장경판전만은 안전했다. 운이 좋아서 피한 것이 아니다. 불이 나도 장경판전에 옮겨붙지 않도록 너비를 유지한 덕에 오늘날까지 팔만대장경이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이 모든 것을 오늘날 최첨단 기술로 설계한다면 족히 수천억은 들것이다. 고려인의 피와 땀이 서린 팔만대장경과 이를 온전히 지키려는 장경판전은 오로지 삶의 경험과 지혜만으로 이룩한 것이어서 그 가치는 도무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불가사의다.


"사진만 찍지 말고 선조들 지혜와 창의성을 배워야 합니다"

박수남 해인사 문화해설사

박수남 해인사 문화해설사.

"팔만대장경이나 장경판전 세계문화유산 앞에서 그냥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해인사를 품은 합천군 가야면에서 태어나 12년째 해인사 알림이 역할을 하고 있는 해인사 문화해설사 박수남씨의 안타까운 토로다.

박씨는 "겉모습보다는 팔만대장경과 대장경판에 담긴 조상들의 나라 사랑과 과학적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해설사는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은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으로 과학적 우수성이 인정되는 만큼 청소년들이 현대 과학의 창의성 발현에도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해설사는 "합천은 해인사 같은 뛰어난 불교문화에다 향교가 4개나 있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곳이다"고 합천의 특수한 융합문화 전통을 되새기면서 "들여다볼수록 오묘한 깊이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 합천이다"고 고향 사랑을 늘어놓았다.

고향에서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녀는 해설사 입문 과정에 대해서 "머리가 허연 나이 지극한 해설사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 그 모습을 닮고 싶어 해설사에 도전했다"면서 "어릴 적부터 해인사에 와서 기도하면 마음이 푸근해진 것도 해설사 일에 뛰어든 요인이다"고 해인사와의 남다른 인연을 말한다.

합천을 찾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장소로 박해설사는 주저함 없이 "황매산은 봄 철쭉도 좋지만 요즘 가을 억새 풍경도 장관이다"고 추천하면서 "합천읍 영창리 핑크뮬리 군락지도 가을에 펼쳐지는 별천지다"고 합천 가을 진풍경을 소개했다.

합천 해설사로 살면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로 "합천은 남명 조식 선생이 태어난 곳이면서도 조식 선생에 대한 역사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쉽다"면서 "어지러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기 몫을 다한 합천의 인물로 남명 조식 선생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박해설사는 달빛 내륙 철도에 대해서 "달빛 내륙철도가 열리면 국내외적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가치가 더욱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면서 합천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달빛 내륙철도는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고 무신경한 현실에 일침을 가했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